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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연구는 현재진행형. 나의 비만은 엄마의 자궁 밖 아빠의 삶과도 연결. 건강한 임신 여부...<임산부 비만 관리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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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인터넷뉴스 2021. 1. 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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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임신한 동안 못 먹어도 문제, 잘 먹어도 문제다. 임신부가 받는 정기 검진에서 체중은 건강한 임신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쓰인다. 2016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대한산부인과학회가 발간한 <임산부 비만 관리 가이드>는 임신부의 체중 증가가 여성 자신과 태아의 건강과 관련 있다고 말하며 임신부의 현재 체중에 맞춤한 체중 증가량을 제시한다.

 

그런데 임신 중인 여성이 체중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엄마와 태아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안내서는 임신부가 비만이면 태어날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비만이나 심혈관 질환, 당뇨병과 같은 성인병을 앓을 확률이 커질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성인인 ‘나’의 비만 여부가 과거 엄마의 체중 관리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모의 유전자 외에 ‘나’의 비만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단서가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디엔에이를 메틸화를 보여주는 그림.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성인기 건강의 기원을 엄마의 자궁에서 찾다

비만은 단순히 체중이 증가하는 현상이 아닌, 체내에 지방이 필요 이상으로 쌓인 상태를 말한다. 비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유전적, 사회적, 환경적 요인 등 비만의 원인을 다방면으로 탐색한다. 비만을 좋지 않은 생활 습관에서 비롯된 성인병으로 보는 학자는 환경적 요인을 주로 연구하는 한편, 다른 학자는 비만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그 작동 기제를 분석한다.현재까지 누적된 연구 결과를 보면 비만의 유전학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소위 비만 유전자라고 불리는, 비만과 관련 있다고 알려진 유전자는 많으나 어떤 사람의 비만 여부를 결정하는 단 하나의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같은 비만 유전자를 가졌더라도 이들 유전자가 모두 똑같이 발현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비만이 유전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는 말은 부모에게서 비만이라는 질병 자체가 대물림된다는 뜻이 아닌, 비만을 유발하는 특정한 환경 조건에 취약한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인 비만 연구는 ‘나’의 비만 여부를 과거 부모로부터 온 유전자와, 현재 내 몸을 둘러싼 환경 또는 그러한 환경에 대처하는 내 생활 습관 사이에 벌어진 상호작용의 결과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인기 비만에 영향을 주는 과거 요인은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뿐이다. 그러나 임신부의 체중이 태아의 미래 비만 여부와 관련 있다는 안내서의 경고는 모체의 자궁 환경을 새로운 과거 요인으로 고려하게끔 한다.

 

비만과 같은 만성 질환이 자궁에서 유래한다는 주장은 1980년대 말 영국의 역학자이자 의사인 데이비드 바커가 처음 제기했다. 이 주장의 핵심은 자궁 내부의 유해한 환경이 태아의 건강에 영속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데 있다.
바커는 임신 기간에 모체의 영양 상태가 나쁘면 저체중아를 출산하거나 태아의 성장이 저해될 수 있고, 태아가 성인으로 자라며 여러 만성 질환에 취약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바커 가설’ 혹은 ‘태아 기원 가설’이라고 불리던 그의 주장은 2000년대 이후 태아기와 생애 초기에 노출된 환경이 성인기의 건강 및 질병을 결정한다는 이론으로 일반화됐다.

후성유전학이 밝혀낸 아빠의 새로운 역할

비만의 원인을 과거 태아 시절의 자궁에서 찾는 건강과 질병의 태아 기원론은 이전까지의 연구가 보지 못한 사회경제적 함의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 이론대로라면 엄마는 현실적으로 지나친 부담을 지게 된다. 여성이 임신하는 순간 자신의 건강 외에 또 한 사람의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운명에 처하기 때문이다. 반면 남성은 아빠로서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 외에 태아의 비만에 특별한 영향을 주지 않는 듯하다.

2014년 3월과 8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는 각각 ‘아빠의 죄’, ‘엄마를 탓하지 말라’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전자는 환경적 요인의 영향을 받아 변화한 동물의 정자 속 유전자(DNA·디엔에이)가 자손에게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후자는 건강과 질병의 태아 기원에 관한 연구가 엄마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보도되는 현실을 전한다. 두 기고문은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아빠가 겪은 환경과 생활 습관 역시 태어날 아이의 건강과 질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한다.
보통 “유전자가 다르다”라는 말은 유전적 차이를 각자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가 다르다는 의미로서 표현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유전자가 같아도 유전 물질의 효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수십억개 이상의 세포는 유전자가 모두 같지만 어떤 유전자가 발현될지는 서로 다르다. 이들 세포는 인체의 각 부위에서 피부 세포, 간세포, 미각 세포 등으로 나뉘어 저마다 다른 기능을 한다.
후성유전학은 이처럼 디엔에이의 염기 서열은 같으나 유전자 발현이 달라지는 현상을 규명하는 유전학의 한 분야다. 유전자 발현에 관여하는 대표적인 물질은 히스톤이라는 단백질 조각과 메틸기라는 화학 물질이다. 염기 가닥 두 줄이 쌍을 이루어 연결된 기다란 디엔에이가 둥글고 꼬리 부분이 튀어나온 모양을 띤 히스톤을 휘감으면 디엔에이는 세포핵 안에 알맞게 압축된다. 메틸기는 메테인 분자에서 수소 원자 하나가 제거된 원자 뭉치의 일종으로 생체 물질에 붙어 물질의 성질을 변화시킨다. 이 원자 뭉치가 히스톤의 꼬리 부분이나 디엔에이의 특정 염기에 붙어 물질을 메틸화하면 히스톤 근처 유전자나 메틸기가 붙은 유전자의 발현 양상이 달라진다.

11살 이전 흡연 남성의 아이, 과체중 가능성 높아

흥미로운 지점은 디엔에이 메틸화로 대표되는 후성유전학적 표지가 세대를 거쳐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남성은 여성과 달리 직접 임신을 하지 않아 유전학적 영향만을 분리해내기 쉬우므로 후성유전학적 표지의 변화를 더 잘 관찰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남성이 경험하는 환경이나 남성의 생활 습관은 정자 속 디엔에이의 메틸화 양상을 변화시키고, 이러한 변화는 수정된 배아는 물론 그 배아가 태어나 생산하는 생식 세포에까지 전달된다. 일반적으로 정자와 난자 등 생식 세포의 유전 물질이 메틸화된 흔적은 수정란이 생성될 때 상당 부분 제거되나 메틸화가 강하게 이루어진 일부 유전자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후성유전학의 기제는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빠의 식습관이나 생애 경험이 태어날 아이의 비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2005년 자녀가 있는 남성 166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연구는 11살 이전부터 흡연한 남성의 아이가 과체중일 가능성이 두드러진다고 전한다. 또한 2010년에 발표된 동물 실험은 고지방 먹이를 먹은 수컷 쥐의 새끼가 췌장 세포 디엔에이의 메틸화 이상으로 체중이 늘어났다고 분석한다.

 

로맹 바레스 연구팀은 남성 생식 세포의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살피고자 위 우회술을 받은 남성을 추적 관찰했다. 이들 연구팀은 사이토신과 구아닌이 인산염으로 연결된 특정 부위(CpG)에 주목했는데, 이 부위의 메틸화 양상은 후성유전학 연구의 표지로 쓰인다. 그림에서 분홍색 원에 적힌 숫자의 합은 수술 일주일 후 적어도 한 군데 이상 메틸화가 일어난 유전자 수를, 검은색 원 숫자의 합은 수술 일 년 후 적어도 한 군데 이상 메틸화가 일어난 유전자 수를 의미한다.

 

2015년 국제 학술지 <셀 메타볼리즘>에 실린 연구는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의 로맹 바레스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비만 치료를 위해 위 수술을 받은 남성 6명을 대상으로 수술 전과 수술 1년 후 사이 정자의 변화를 살폈다. 피험자들이 위 수술로 체중 감량을 했을 때 정자의 유전자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한 결과, 체중이 줄어든 남성의 정자 유전자에서 식욕 조절에 관여하는 부위를 중심으로 메틸화가 다수 진행된 것이 확인됐다. 변화 속도 또한 예상보다 빨랐다. 피험자가 수술한 지 일주일 만에 유전자 1509개에서 메틸화 양상이 달라졌으며, 일 년 후에는 그보다 두 배를 훌쩍 넘는 유전자 3910개에서 메틸화 변화가 발견됐다.

 

비만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신생 학문인 후성유전학은 아직 밝혀지지 않거나 논쟁적인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이 분야의 최신 연구는 유전자와 환경이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며 개인의 건강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무엇보다 지금껏 유전자를 전달하는 역할만 담당해온 남성에게 태어날 아이의 건강을 위한 새로운 임무가 부여된 점은 의미심장하다. 나의 비만은 엄마의 자궁 밖 아빠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다.
오피니언 임소연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원문보기: 한겨레신문 2021-01-01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76833.html#csidxfc257a317441dfeac5ba05389f34a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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