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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 詩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일상모음

by 진주인터넷뉴스 2021. 1. 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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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은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화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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